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

세키가하라 대전투(関ヶ原, Sekigahara, 2017) 후기

by Yulpo 2022. 10. 23.
반응형

1600년, 일본 역사를 결정지은 전투가 세키가하라에서 있었다.

1592년 4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여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8년 12월에 이르러서야 끝났습니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일본군은 조선으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순신 장군께서 1598년 12월 16일 노량해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하신 것까지는 대부분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은 1600년 10월 21일, 일본에서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라고 불리우는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전투에 참가한 다이묘들과, 무장들을 보면 고니시 유키나가, 와키자키 야스하루 등과 같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던 일본군 장수들의 익숙한 이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일본 기후현으로, 지도를 보면 관동 지방에서 관서(간사이) 지방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래 구글 지도 참조)

 

https://www.google.com/maps/place/%E9%96%A2%E3%82%B1%E5%8E%9F%E9%A7%85/@35.3639515,136.4692925,16.75z/data=!4m5!3m4!1s0x0:0xb5a4fd1d852543b2!8m2!3d35.363802!4d136.470368?hl=ko-KR 

 

関ケ原駅 · 일본 〒503-1501 기후현 Fuwa District, 세키가하라조 세키가하라

★★★★☆ · 환승역/정류장

www.google.com

 

구체적인 전투 경과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적지는 않겠습니다.

 

쉽게 말해 이 전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일본의 지배자를 놓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지지하는 세력(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지하는 세력(동군)이 한판 붙은 싸움이었고, 결과적으로 동군이 승리하여 도쿠가와 막부(에도 막부)가 들어서서 향후 약 250년 간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가 성립하게 됩니다.

 

본론은 영화 감상인데,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처럼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투인데, 마침 왓챠에 '세키가하라 대전투'라는 제목의 영화가 올라와 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전투 당시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상황부터 시작해서, 전투 당일의 모습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일본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 배경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영화는 역사상으로도 전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이자 나름의 '신념'를 가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문 문장

영화에서 묘사된 이시다 미츠나리의 신념은 '대일대만대길(大一大万大吉)', '한사람이 모두를 위해 모두가 한사람을 위해 노력한다면 천하는 행복해진다'는 것인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Do you know "One for all, All for one"?

 

이시다 미츠나리의 생애를 보면 그 또한 커다란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거병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화 속에서는 위와 같은 신념에 충만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그러면 그런 신념으로 임진왜란에는 왜 참전한 것인지 의문도 들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또한, 악역이라기보다는 엄청난 정치력과 처세술을 갖춘 능구렁이같은 능력자로 묘사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전투의 경과를 보면, 당시 히데요시 사후에 일본의 최대 세력가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투를 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지지 세력을 확보해놓고, 일부러 이시다 미츠나리의 봉기를 유도하고, 반대파를 한 곳에 모은 후 처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중에 계속 느낀 것은, 미츠나리의 서군은 애초에 싸울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시다 미츠나리야 패배하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다른 다이묘들은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충성을 명분으로 모이긴 했지만 사실 지배자가 도요토미 가문에서 도쿠가와 가문으로 바뀌더라도 자기 가문만 번영할 수 있다면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시다 미츠나리는 조별과제에서 의욕 없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조장의 입장이었던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도 들지만, 이시다 미츠나리의 인성 때문에 그런 사람들만 모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애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쌍벽을 이루던 사람으로서, 일본의 패권을 노리기 위한 자원적인 측면에서 서군을 압도하고 있었고, 정치력도 잘 발휘하여 다수의 세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상태였습니다.

 

결국 서군 입장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계자를 위한 기반을 잘 닦아 놓지 못한 것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패배,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1614년~1615년의 오사카 전투에서의 패배로 이어지고, 도요토미 가문이 2대 만에 멸망하는 원인이 된 것이겠지요. 여기에 약간 더하자면, 히데요시의 무모한 조선 침략으로 인하여 지지 세력이 이탈하거나 지지 세력의 군사력에 타격을 입은 것 또한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합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조선군이 결사적인 항전으로 일본군에게 가한 타격이 마치 나비 효과처럼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보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여튼 영화는 역사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당시 전투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전투 씬은 좋았습니다. 특히 기병들이 등에 '호로'라는 바구니 모양의 망토를 붙이고 돌격하는 모습은 신선했습니다. 굳이 왜 풍선 같은 것을 달고 전장에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미츠나리 휘하에 조선 출신 포수가 등장한다는 점, 미츠나리와 쿠노이치(여닌자)의 로맨스가 좀 뜬금없다는 점, 이시다 미츠나리를 상당히 미화한 것 같다는 느낌 등등 여러가지 생각도 들었지만, 이 영화 나름대로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수긍은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적인 재미가 다소 떨어질 지언정, 적어도 세키가하라 전투가 어떤 전투였는지 글로만 보다가 영화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워게임으로 체험하자!

영화를 보고 나니 세키가하라 전투를 다룬 워게임, 또는 일본사를 다룬 워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 올랐습니다. 덕분에 충동구매를 하기도 하였으나...워게임에 대한 동기 부여는 확실히 되었습니다.

 

일본은 워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우리나라보다는 많고, 그 덕분에 일본의 역사를 다룬 워게임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워게임의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세키가하라 전투는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주제라서 워게임의 종류 역시 다양한데, 앞으로 조금씩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