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이 절정에 달하던 시대. 핵전쟁이든 재래식 전쟁이든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뉜 세상인 탓에 다음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이 시대는 보드게임에서도 흥미로운 소재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황혼의 투쟁"(GMT)일 것이다.
다만, 황혼의 투쟁은 게임에서 데프콘 수치를 낮춰서 전쟁을 일으키는 진영이 패배하게 되는 룰이 핵심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전쟁을 일으킨 진영은 인류의 공멸을 부르는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워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미소 냉전 시대에 서로를 겨누고 있던 항공모함, 잠수함, 전투기, 폭격기 등과 같은 다양한 무기체계들이 전쟁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치열한 전투 끝에 승자가 가려지는 게임을 한번쯤 꿈꿔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냉전시기 미소 양국의 가상 전면전을 해공군 중심으로 다룬 워게임이 바로 이번에 소개할 "블루 워터 네이비"(Compass games)이다. 플레이어는 각각 나토와 소련 진영을 담당한다.
Blue water navy란, "대양해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군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익숙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연안해군은 Brown water navy라고 부른다. 대양해군은 전 세계 바다를 무대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해군을 의미한다. 통상 항모전단, 핵추진잠수함 등의 무기체계가 전제로 되므로 미소를 비롯한 강대국만의 전유물에 해당한다.
이 게임은 카드드리븐 게임이지만, 카드의 사용 빈도를 보면 각 진영별 55장의 카드 덱이 여러 번 순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패스 오브 글로리 같은 게임과는 차이가 있다.
게임 맵은 GMT 표준보다 약간 작은 맵 2장을 사용한다. 좌우로 길게, 미국 본토부터 서유럽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대서양을 포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지도를 보면, 주요 전장은 크게 발트해, 지중해, 대서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초반 소련은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점령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위 전장과 더불어 북유럽과 남유럽에서의 지상전은 상당히 추상화되어 있다. 이를테면 한 턴이 끝날때 지상군이 한칸 전진할 수 있고, 이를 저지하려면 나토는 콘보이(호송선단)로 보급물자를 유럽 항구로 실어날라야 하는 것이다.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재래식 전면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은 First strike point(FSP)라는 시스템에서 잘 드러난다. 소련 탄도미사일 원잠이 선제타격 구역에 배치된 상태로 특정 턴이 종료되면, 소련은 특수한 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FSP를 받게된다. 소련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포인트인데, 자칫 탄도미사일 원잠(SSBN)을 격침당하면 오히려 소련의 안정도가 떨어져서 패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를 가지게 만드는 요소이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진영, 그리고 소련 진영이 가진 수많은 무기체계가 총출동한다는 점에서 워게이머에게 어필도가 높은 게임이기도 하다. 특히 잠수함, 항모전단 등을 세부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워게임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던 1980년대 미소간 전쟁을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게임으로 즐기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세계대전은 피했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 게임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어떤 명분이든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해군력 보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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