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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도서] 아르덴 1944(앤터니 비버 저) 감상 후기

by Yulpo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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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12월 16일 개시된 독일군의 아르덴 공세를 다룬 역사서이다.

눈덮인 아르덴 숲과 언덕을 떠올리게 하는, 추운 겨울에 읽을 만한 전쟁사 서적이다.

자세한 전투 개요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으나, 이처럼 '전쟁사' 서적이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게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논점들을 공유하고 해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은 드문 것 같다. 

 

 

전쟁 상황을 이해하기 쉬운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고, 아르덴 공세가 시작되기 전과 종결된 후의 여러가지 정세들을 포함해서 마치 소설을 읽듯이 글의 흐름을 이어가는 저자의 글솜씨도 훌륭하다. 저자는 일개 소대장이나 병사들의 시선부터 최고위급 장성들, 히틀러와 아이젠하워와 같은 인물들이 바라보는 전략적인 관점을 수시로 오가면서 독자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러한 구성 상 책을 통해 아르덴 전투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몇 가지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레오니다스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민족을 위한 가장 고귀한 희생의 표본이라고 교육 받았다. 이런 희생정신이야말로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 만약 우리 독일이 패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평범한 인간이 말하는 대로 '독일 민족은 이제 모두 망했다. 더 싸워봐야 뭐해? 미친 짓이지!'라면서 포기한다면, 더 많은 희생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평화협정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절대 아니지! 반면에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싸우지 않은 국가는 절대 다시 국가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포로로 잡힌 무장친위대 대령, 포로수용소의 비밀 녹음 기록

 

당시 패색이 만연했던 독일군이었지만, 군인들 중 일부는 이른바 '불사조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비유에 어울리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강제로 징집당한 병사들, 그마저도 승리의 영광이 아닌 패배의 공포만이 기다리는 전장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싸울 이유를 찾고 있었다. 오늘날의 각국 군인들은 어떠한가. 레오니다스의 테르모필레 전투는 영화 '300'으로 유명한 전투인데,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죽음을 각오하면서도 전장에 나서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독일을 패망의 길로 몰아넣은 히틀러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망상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성공을 거둔 기억이, 1944년에도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덴 공세를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인데, 당시 히틀러 휘하 장성들은 이러한 작전의 무모함과 실패 가능성에 대하여 저마다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감히 지도자의 지시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씁쓸했다.

 

히틀러는 독일군 선봉대가 안트베르펜으로 진군해 들어가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고 했다.

- 히틀러의 공군 부관 폰 벨로 대령

 

물론, 불합리한 명령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 대신 대안책을 마련하여 주장한 이들 또한 존재했다. 방어전의 명장으로 불리던 발터 모델 원수는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작은 해결책'이라 불리는 대안을 제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르덴 공세 초반에는 히틀러의 작전지시 대신 공격 시작시간 및 방법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번 작전은 이 전쟁을 통틀어 가장 준비가 엉성한 공격일 것"

- 발터 모델 원수

 

비록 작전 자체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바와 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도자의 지시와 목표를 최대한 달성하기 위하여 각종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에 옮겼던 실무자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자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처구니없는 지시에 대하여 불복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따르는 척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대안을 고민하고 상관의 평가와 관계 없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발터 모델 장군은 해를 넘긴 1945년에도 활약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책임을 다하고, 책임을 더이상 다하지 못하게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군인에게는 최고의 명예이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명예를 추구할 생각조차 안하는 군인이 얼마나 많은가.

 

한편, 독일군의 공세를 좌절시킨 원인 중 하나는, 연합군 측에도 뛰어난 리더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25만 부를 인쇄해서 제3군의 모든 장병에게 돌려라"

- 미3군 사령관 패튼, 군종목사가 작성한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기도문을 보고 지시하다.

 

패튼 장군이 여러 매체에서 이미지화한 것처럼 단순히 저돌적이거나 다혈질의 인물에 불과했다면 군사령관의 지위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전쟁이 없었던 시절이라면 지휘관이 될 수 없었던 사람에 해당한다. 평시에는 부하에게 인기 있는 상냥한 군인이 대거 진급하겠지만, 전시에는 군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인물이 지휘관이 되어야만 한다.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국가가 부여한 소명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고, 전장에서의 승리가 부하의 생명을 지키고 부하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이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이나 인기와는 상관 없이 오로지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성과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모습은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능력과는 관계 없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 또는 능력만으로는 절대 좌우할 수 없는 우연한 사정들로 인하여 회사에서 배척받는 경우가 있다.

 

다만, 전쟁을 맞이한 군인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변수들의 영향이 제로에 가까운, 전쟁이라는 너무나 결과가 명확한 과제가 주어지기에 그 속에서 온전하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거와 같은 전면전이 현대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므로, 패튼을 닮은 군인이 출세가도를 달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의 희박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말이다.

 

연합군이 독일군의 아르덴 공세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보전에서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연합군은 이미 1944년 11월 중에 독일군 46개 사단이 대공세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얻었지만, 이를 묵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아르덴 전투 후 정보 분석 담당자들은 처벌받았어야 했는가? 굉장히 비논리적인 귀결이다. 같은 논리라면 정보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한 최고지휘관이 처벌받아야 한다. 정보전에서 실패했다는 평가는 결과론에 불과하다. 진주만 공습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을 것이지만,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누군가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방법으로서 실제 전투 또는 정보전에서의 패배를 특정한 군인에 대한 처벌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행위는 군의 전투력과 사기를 스스로 붕괴시키는 자해 행위에 불과하다.

 

클라우제비츠가 저서 전쟁론에서 '전장의 안개'를 논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언제나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의 연속이었다. 현대전에서도 수많은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정보전을 펼치지만 100% 예측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부하들이 일으키는 각종 사건사고를 지휘관이 100%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도 모든 사건사고를 막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여론은 항상 쉬운 길을 선택하여 희생양을 찾곤 한다. 아르덴 공세를 펼친 독일군도, 이를 막아낸 연합군도 필사적으로 자의든 타의든 군인의 본분을 다하고 수만 명의 젊은 목숨이 추운 겨울 땅에서 스러졌다. 이들은 비극적인 희생자보다는 군인의 명예를 지킨 사람들로 기억되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살아남은 군인들은 실패를 통해 배울 것을 찾기 위하여 전쟁사를 탐독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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