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오브 글로리 : 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으로 뛰어들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작 워게임

 

패스 오브 글로리(Paths of Glory)는 현재 보드게임긱(Boardgamegeek) 워게임 순위 3위를 자랑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순위가 높은 게임이라고 하여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배경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게임에 해당할 것입니다.

 

참고로 보드게임긱 워게임 순위 1위는 반지전쟁, 2위는 황혼의 투쟁으로서 전통적인 워게임과는 거리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워게임 중 최고 순위를 지키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1위와 2위 게임은 이미 한국어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패스 오브 글로리 역시 한국어 버전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게임은 무려 1999년에 출시된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24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명작 워게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고 있는 현역 게임입니다. 워게임의 역사에 있어서도, 카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는 형태의 카드 드리븐(Card-driven) 시스템을 가진 게임 중 가장 확고한 위치를 정립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멋짐을 알게 된 디자이너들이 이후 패스 오브 글로리와 유사한 카드 드리븐 방식의 워게임을 다수 출시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원조를 뛰어 넘는 게임을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고전게임

 

게임의 구성물과 규칙 모두 1999년 출시된 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듬어지면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GMT사는 컴포넌트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최근 판매되고 있는 디럭스 버전은 마운티드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플레이하기 용이합니다.

 

온라인으로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도구인 Vassal 모듈로도 잘 구현되어 있어서, 외국에서는 플레이어들이 메일을 주고받으며 하는 온라인 플레이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래더 게임이라고 불리는 토너먼트 대회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즉, 게임 자체도 더 이상 수정이 필요 없는 수준에 도달하였고 플레이어들 역시 다양한 전략을 시도하면서 게임성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카드 한 장에 고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카드 드리븐 워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 게임의 한 가지 특징을 살펴 보자면, 이 게임은 1턴이 6개의 라운드로 구성되는데, 각 플레이어는 라운드마다 카드 한 장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면서 진행됩니다. 

 

이 때, 카드는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먼저, 작전포인트(OP)로 유닛을 이동 또는 공격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전략이동(SR)으로 유닛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보충포인트(RP)를 획득해서 턴을 마치기 전에 손상된 유닛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로 카드에 적혀 있는 이벤트(Event)를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The Central Powers)과 프랑스, 영국 등 연합국(Allied)은 저마다 55장의 카드 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카드들은 다시 동원, 제한전, 전면전의 세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처음에는 동원 단계의 카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전쟁상황 수치가 올라가면서 제한전, 전면전 카드가 덱에 추가됩니다. 이는 황혼의 투쟁(2006)에서 초기, 중기, 후기 카드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와 같은 규칙 덕분에, 각 플레이어들은 매 턴을 시작할 때 손에 가지고 있는 카드들의 구성을 보고 어떠한 방향으로 전략을 세울 것인지를 구상해야만 합니다.

 

어떤 카드가 뽑힐 지 모른다는 것이 카드-드리븐 게임의 묘미인데, 이벤트로 사용하면 제거되는 카드가 있다는 점, 그리고 덱이 한 바퀴 돌면 버린카드들을 섞어서 다시 덱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고려하면서 게임을 운영해야 합니다.

 

9월의 포성 카드

 

처음 플레이를 하면 한 장의 카드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또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양 진영이 가진 55장의 카드(옵션 카드를 더하면 65장)가 어떤 이벤트로 사용되는지 익숙해져야 하고, 플레이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욱 게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테마를 즐기는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카드 한 장 한 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게임에 익숙해진 후에는 흡사 장기나 바둑을 두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몇 가지 정석으로 굳어진 전략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게임에서의 승리를 위한 행동이 강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역사를 체험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보드게이머의 손에서 다시 시작되는 제1차 세계대전.

과연 동맹국과 연합국 중 누가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단지 전쟁의 참상만이 남게 되는 것은 아닐지...